한국의 양봉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부터 동양종벌
즉 토종벌을 전국 방방곡곡 농가에서 절에서
양반집에서 몇통씩 키우면서 벌꿀과 밀랍을
채취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명실공히 찬란한
양봉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였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관심을 갖고서 우리 조상들의
손 때 묻은 양봉기구나 도구,소품,서적,자료를
보관하여 간직하고 있는 양봉박물관 하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을 보며는 안타깝기만 하다.
참고로 1920년대 조선총독부 통계 자료를 보며는
전국의 양봉가구가 55,924가구가 118,813군
(토종벌 114,897군,서양종벌 3,916군)을 사양하고
있었든 양봉대국이었는데 지금은 토종벌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고 그나마 서양봉벌은 양봉인들의 기술 보급과
교육으로 연구 발전으로 날로 번창하고 있지만
한정된 밀원으로 앞으로 양봉산업의 발전에
해결해야 할 중대 사항인것 같다.
장래 우리 후손들에게 설명 해 줄 자료 하나 없는 나라이지만
필자의 노력으로 지금 까지의 우리나라 근대 양봉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국내 최초로 조사하여
간략하게나마 공개 하고자 한다.
더 더구나 대구시와 달성군이 우리나라 양봉과 벌침의
메-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전무인 사실은
양봉인들 뿐만 아니라 학계나 역사가나 일반인들 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탈피하고자
대구시와 달성군에서 양봉박물관이나 자료관을 하루 빨리
설립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찬란한 양봉역사의
뿌리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종벌로써 양봉을 한 기록으로써는
명치 43년 즉 1910년 경술년 한일합방 당시
대구시 달성군 논공면에서 다년간 과수원을 하면서
양봉도 한 "백기농장"주 일본인 "오카모또"씨가
기록상으로는 한국 최초의 양봉장이라고 사료되며
또한 "백기양봉원"에서 양봉 종봉 분양과 벌꿀판매,
각종 양봉기구를 대구시 시장북로와 중앙통에서
사업을 하였고(출처:조선의양봉) 그 당시 대구의
주요 상공인들 중에서 영업세 10엔 이상을
납부한 사람들의 명단에 "오카모또"씨가 올려 져 있는
사실을 볼 때 근대 양봉계의 거두로써 활동을 한것을
알 수 있다.(출처:대구의 일본인)
다음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할 내용은 우리나라
근대 양봉의 맥락인 1914년 순 한글판 양봉서적인
"양봉요지"를 쓰신 독일 "오틸리아연합회 성베네딕도수도회"소속
독일인"카리시우스 케겔겐=구걸근"신부님이
1911년 일본에서 서양종벌을 갖고와 서울 백동수도원에서
벌꿀과 밀랍을 채취하기 위해서 양봉을 하셨고
1917년 12월에 독일식 양봉법을 기초로한 "봉파 윤신영"선생님이
쓰신 "실험양봉"이라는 양봉서적과 일본식 양봉법을 기초로 한
1918년 9월 "소정 이근영"선생님이 쓰신 "양봉신편"책자가 있다
참고로 "소정 이근영"선생님이 쓰신 "양봉신편"은
대구시 국천서장"에서 발행하였고 달성군 하빈에 있는
"하목정"이 있는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1412번지에서
저술도 하시고 양봉도 하신 자료를 바탕으로
대구시와 달성군이 문화적,교육적, 유산적인 가치를 내 세워
한국양봉의 금자탑을 만들어 주기를 제안 해 본다.
또한 우리나라 근대 양봉의 선구자 역활을 하신 "고용호" 선생님께서
일본 오사까농림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 기후시 "와타나베양봉장"에서
1년간 "와타나베히로시"선생으로 부터 양봉실습과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서 서양종벌인 이타리안종 벌 15군을 한국에 갖고 와서
1920년도에 양봉을 시작하시면서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화원면,월배에서
이동양봉을 하시면서 한국 최초로 1935년 대구시 대봉동에
"高宮養蜂園"을 개설하여 전국의 양봉업자들에게 각종 양봉기구를 보급하셨다
양봉에 전념하시다가 1948년 한국초대 농림부 양봉과장을 역임하시고
양봉 보급과 발전에 힘쓰시다가 1952년 6.25사변 피난시 의원사직하시고
대구시 범어동(현 범어로타리) 과수원 6000여평을 매입하여
봉군 50군을 구입하여 "고려양봉원"으로 개칭하여 양봉을 재시작하셨다.
1954년 한국 최초로 봉아부폐병 발생으로 그 당시 구제약품이 없어
갖고 있던 봉군 150군을 비롯한 기구 전부를 소각하는 아품도
격으면서 양봉에 전념하시면서 대구 근교의 달성군 소재 월배.
옥포 화원유원지,다사...지역에서 이동 양봉도 하시면서
특히 1958년 화원유원지 일대 재래종 밤나무 밀원지에서
홍수로 인하여 봉군 100군이 유실된적도 있었지만
1959년 봉군수를 250으로 확장시키고 1군2왕법 관리에 성공도 하시고
1960년 그동안의 전문가적 실무 기반을 토대로 "양봉종전"이라는
양봉서적도 발간하여 보급하여 우리나라 양봉산업에 크게 기여하시고
명실공히 대구시 소재 고려양봉원을 통하여 양봉기구 개발과
기술 보급에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우리나라 양봉산업의
양봉역사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양봉 공부를 하는 한사람으로써 많은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근대 양봉의 뿌리속에서도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를
비탕으로 대구고려양봉원 주체로 1984년 5월 7일~8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대구수성관광호텔 은하수홀"에서
일본봉침협회 회장단 강사분들이 봉침교육을 하면서
우리나라 봉침요법의 보급과 한국봉침요법 연구회 발기가
태동하면서 지금까지 "한국봉료보건연구회" 회원들이
전국에서 활약을 하면서 벌침과봉료법 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돌이켜 보건데 우리나라 근대 양봉산업의 뿌리가 대구 고려양봉원과
동아양봉원,정선양봉원이 있으며 "소정 이근영" 선생님이 귀향하셔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서 "양봉신편"을 저술하시고
대구에서 인쇄,발간한 역사적인 양봉자료들이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곳 대구시와 달성군에서 양봉에 관한 자료관이나
박물관 하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료제공: 한국봉료발전연구회 이영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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