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토종벌통에 관한 자료들을 15년 전 부터 찿다보니
그동안 가서 보고 싶은 장소였지만 이제사 틈을 내어 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양종꿀벌을 갖고 오시고 "양봉요지"라는 순 한글로 된
양봉서적을 편찬하신 독일인 퀘겔겐=구걸근 신부님이
1911년 2월 부터 6월 까지 4개월간 성베네딕도회 오틀리엔 연합회
"노르메트로 베버" 아파스님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일기형식으로 기록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기록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번역되어 있는 자료 중에 "벌통도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데,
속을 파낸 통나무 위에 초가지붕(멍덕)을 모자처럼 씌워 놓은것이다.
한국에서 벌통은 평화적 양봉외에 전투수단으로 쓰인다.
1804년의 동학란 때도 벌통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풍수원 본당의 르 메르 신부는 매일 폭도(동학군)의 공격에 시달려야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외국인을 몰아낼 작정이었다.
르 메르 신부는 연통 몇 개와 양봉용 벌통을 검게 칠해 담장 위에 올려 두었다.
동학군이 저자거리에 진입하면, 그는 본당이 보유한 총 세 자루를
몇 차례 동시에 쏘아 본당이 강력히 무장하고 있음을 알렸다.
본당 방어가 의외로 강력하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아준 덕분에
본당은 동학군의 침탈을 면 할 수 있었다"
이 기록문은 1911년 5월 11일에 기록된 자료입니다 ***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으로 부터 110년 전 우리나라 양봉농가에서
토종벌을 키운 자료나 기록물이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해서 우리 조상들의 양봉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양봉인들을 보며는 ................................................
그나마 이번에 풍수원성당의 박물관에서 토종벌 벌통 3개가 비치되어 있는것을 보면서
정말로 우리조상의 손 때 묻은 벌통을 보게 되어서 가슴이 벅찬 느낌이 드네요^^^
<<참조 자료>>
강원도에 있는 성당으로, 원래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천주교 신도들이 피난처로 삼아 모여 살던 곳이다.
고종 27년(1890)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Louis Le Merre)가 1대 신부로 부임하여
초가 20칸의 본당을 창설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에 부임한 2대 정규하(1893∼1943) 신부가 직접 설계하여
본당을 지었는데, 융희 1년(1907) 중국인 기술자와 모든 신도들이 공사에 참여하여
현재의 교회를 완공하였다.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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